
지난 8년간 1,000여 개의 브랜드의 스토리를 발굴해 온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
비마이비는 하나의 브랜드를 깊이 다루거나, 하나의 주제를 넓게 다루며 브랜드를 큐레이션하고, 사람을 만나고, 매월 이달의 브랜드를 선정합니다.
이번 주의 마이비레터에서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특별한 분야, 영화 산업을 발전시킨 다섯 브랜드에 대해 다룹니다. 더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술을 혁신해 온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아요.
요즘 극장 가보셨나요? 예전처럼 "1관에서 봐요."라고 말하기 애매해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맥스관', '돌비관'처럼 이름이 붙어 있죠. 각각의 이름에는 단순히 마케팅 용어가 아닌, 영화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은 기술 혁신이 숨어 있습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요즘, 우리는 여전히 극장을 찾습니다. 극장이어서 가능한 압도적 영상미, 영화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음향 효과는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데요. 이렇게 ‘시네마틱한’ 경험 뒤에는 최소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게 기술을 연마해 온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영화 산업은 예술적 가치와 기술적 성취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렇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고, 수많은 브랜드가 경쟁하죠. 그렇게 치열한 시간의 시험을 견딘 브랜드들은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왔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2D에서 3D로, 거대한 극장용 카메라에서 드론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극장의 마법'을 만드는 데 이바지해 왔죠.
이번에 소개할 5개 브랜드는 단순한 장비 제조사들이 아닙니다. 감독들과 배우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관객들의 삶을 바꿔놓을 경험을 선사하는 파트너들이죠. 1세기 넘게 업계를 책임진 베테랑부터 드론으로 영화라는 콘텐츠의 판도를 바꾼 당찬 도전자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산업을 혁신해 온 5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01 IMAX : 박물관에서 블록버스터로, '거대한 경험'의 대명사가 되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맥스는 본래 엑스포 등에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자료 출처 Deadline
‘사람이 볼 수 있는(eye) 최대한(max)을 보여준다’라는 뜻을 담은 아이맥스(IMAX)는 1967년, 캐나다 엔지니어 윌리엄 쇼(William Shaw)가 처음 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상영할 영상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죠. 윌리엄은 기술 개발을 의뢰한 다른 영화 제작자들과 야심 차게 아이맥스를 브랜드화했지만, 25년 넘게 ‘전시용 기술’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촬영 비용이 워낙 비쌌고, 규격에 맞는 상영관도 적었기 때문이죠.
리처드 겔폰드가 아이맥스를 인수하며, 아이맥스는 본격적인 브랜드의 길을 걷습니다 / 자료 출처 Deadline
하지만 1994년,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월스트리트 투자자이자 M&A 전문가, 리처드 겔폰드(Richard Gelfond)가 아이맥스를 인수한 것이죠. 겔폰드는 영화 산업은 잘 몰랐지만, 사업 감각은 탁월했습니다. 학창 시절 스포츠 월간지를 발행해 2만 부 넘게 팔았을 정도였죠. 그런 그에게 아이맥스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지구상 최고의 영화 경험’이었습니다.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1998년 아이맥스 영화를 직접 제작했지만 흥행에서 참패했고, 2001년에는 주가도 폭락했죠. 하지만 겔폰드는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며, 차근차근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했습니다.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을 권하는 대신, 기존 영화를 아이맥스 버전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어필했죠. 2006년부터는 극장에 헐값으로 아이맥스 시스템을 설치해 줬습니다. 그 대신 해당 극장에 수수료를 받으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죠. 할리우드 콘텐츠의 흥행과 아이맥스만의 경험이 연동되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영화가 아닌 체험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영화 ‘그래비티’. 아이맥스 기술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힙니다 / 자료 출처 Deadline
그리고 2008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 2009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엄청난 흥행을 터뜨리며 아이맥스도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두 작품의 성공을 보면서 다른 제작자들도 아이맥스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이후에도 아이맥스는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 맞춘 아이맥스 레이저(IMAX with LASER), OTT 콘텐츠를 아이맥스 화면 비율로 확장하는 아이맥스 인헨스드(IMAX Enhanced) 등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 중입니다.
이제 IMAX는 단순한 상영 포맷이 아닌, 프리미엄 영화 경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89개 나라에 1,821개의 아이맥스 상영관이 운영 중이죠. 교육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시작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필수 요소가 된 아이맥스는 '더 크고, 더 몰입감 있는' 영화 경험이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02 Dolby : 영화관을 '몰입의 공간'으로 진화시킨 음향의 마법사
극장 속 돌비 애트모스로 익숙하지만, 사실 돌비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 자료 출처 TheWrap
지금은 돌비 시네마로 더 익숙하지만, 사실 돌비의 시작은 오디오 연구소였습니다. 1965년 미국 공학자 레이 돌비(Ray Dolby) 박사가 고음질의 오디오 테이프 제작을 목표로 설립했죠. 사실 레이는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고, 1956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테이프 레코더를 개발하는 등 이전부터 업계에서 두각을 보였는데요. 인도에서 UN 기술 고문으로 일하던 와중에 ‘큰 소리와 작은 소리로 음성을 분리하면, 잡음은 줄이고 음악과 목소리는 깨끗하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잡음 제거(NR)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70년대에는 가정용 오디오에도 적용되며 이름을 알렸죠.
돌비는 1970년대 들어 ‘오디오 기술’에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발돋움했습니다 / 자료 출처 studiobinder
돌비가 극장까지 영역을 넓힌 건 1975년이었습니다. 좌우에서만 음향을 내보내던 기존의 스테레오 시스템에, 중앙과 후방 채널을 추가한 ‘돌비 스테레오(Dolby Stereo)’를 만든 거죠. 그의 기술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스타워즈’ 등에도 사용되며, 돌비는 현장감 넘치는 오디오 기술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82년에는 가정용에 적합하게 개조한 ‘돌비 서라운드(Dolby Surround)’도 선보였어요.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 미국의 하만 카돈(Harman/Kardon) 같은 세계적인 업체들도 돌비의 기술을 사용할 정도였죠. 1990년대에는 디지털 시대에 맞춘 솔루션을 선보이며, 글로벌 극장 사운드를 책임지는 거목이 되었습니다.
돌비 음향의 힘을 잘 보여준 영화 ‘그래비티’ / 자료 출처 British Cinematographer Magazine
2010년대 들어 돌비는 영화 음향의 패러다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넓혔습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가상의 3D 공간에서 어떤 소리가 어디에서 날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를 선보였거든요. 스피커 수나 위치와 상관없이, 제작자 의도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 기술을 적용한 2013년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아카데미 음악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등 사운드 관련 분야에서 대거 수상하기도 했어요. 돌비 기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였죠.
이제 돌비의 다음 목적지는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물론 넷플릭스, 디즈니,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모든 플랫폼에 진출하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에, 올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어 더빙판에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적용하는 등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60년 넘게 세계 최고의 지위를 지켜왔지만, 돌비는 지금도 ‘현장감 있는 음향 = 돌비’라는 공식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03 RED Digital Cinema : 선글라스 기업가가 일으킨 디지털 영화 혁명
지금도 레드 카메라는 아름다운 영상미를 위한 필수품으로 꼽힙니다 / 자료 출처 BusinessWire
2009년 영화 ‘국가대표’와 2010년 KBS 드라마 ‘추노’. 한국 최초로 레드 원(RED ONE)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들인데요. 특히 ‘추노’는 당시 경쟁작들보다 훨씬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대중들에게 ‘레드(RED)’라는 브랜드를 처음으로 각인시킨 계기였죠. 놀라운 건, 이 브랜드의 창업자가 선글라스로 유명한 오클리(Oakley)를 세운 짐 제너드(Jim Jannard)라는 거예요. 영화업계 관련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그는 어떻게 전 세계 영화 촬영장의 풍경을 바꿔놨을까요?
그 비결은 ‘영화라는 마법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다’라는 짐의 집착에 있었습니다. RED 이전에도 디지털 영화 카메라들은 있었지만, 장편 영화에 쓰기에는 품질이 떨어졌죠. 짐은 최고의 선글라스를 목표로 오클리를 시작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성능의 디지털 영화 카메라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기존 필름 카메라보다 작으면서도 다루기 편하고, 4K 해상도를 담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RED는 2007년 레드 원(RED One)으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파격적인 제품 구성과 판매 방식으로, 레드는 영화 카메라 시장을 혁신했습니다 / 자료 출처 BAI-LEY
RED는 판매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2007년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판매했죠.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팔던 이전 카메라 회사들과 달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모든 부분을 레고처럼 모듈화해 제공했어요. 액정부터 손잡이, 나사까지 판매해 고객이 레고처럼 나만의 카메라를 조립할 수 있게 판매한 거죠. 온라인 직거래로 가격도 낮추고, 고객 편의성도 잡은 RED의 세일즈 전략은 영화 업계인들에게 경험한 적 없는 편리함을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기능성과 가격대로 RED는 영화 ‘마션’부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왕좌의 게임’ 등 명작들의 명장면을 책임져왔습니다.
니콘에 인수된 레드는 이제 소규모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 자료 출처 Vimeo
이렇게 고품질 영상의 민주화를 선도해 온 RED는 2024년, 일본 카메라 브랜드니콘(Nikon)에 인수되며 니콘의 영화 카메라 사업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거래 금액만 8,700만 달러로, 글로벌 영화 기술 시장에서 큰 화제가 됐는데요. 이번 인수를 계기로 RED는 1인 크리에이터, 인디 영화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랜딩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프로 영상물 플랫폼으로 유명한 비메오(Vimeo)와 손잡고 단편영화 지원금 프로젝트를 런칭한 게 대표적이죠. 지난 7월 첫 수상작들이 발표돼, 제작자들은 각각 3만 달러의 상금과 RED 최신 제품 및 소프트웨어, 업계 선배들과의 멘토링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이처럼 레드는 영화 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해 왔습니다. 소니와 캐논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등장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는 와중에도 ‘합리적인 가격에 압도적인 품질의 결과물을 제공한다’는 핵심 가치를 놓지 않았죠. 그 덕분에 RED의 제품과 소프트웨어, 파일 형식이 업계의 표준이 된 것 아닐까요?
04 ARRI : 100년 넘게 영화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온 독일 명가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영화의 조명을 책임져온 브랜드, 아리 / 자료 출처 ARRI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빛 아닐까요? 빛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같은 배우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도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중요한 빛을 100년 넘게 책임져 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1917년,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한 독일의 두 젊은이가 창업한 아리(ARRI)입니다.
아리는 어릴 때부터 절친했던 아우구스트 아놀드(August Arnold), 로베르트 리히터(Robert Richter)가 설립했는데요. 지역 전기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둘은 필름 현상 전문가, 프리랜서 카메라맨 등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함께 창업한 후에는 여러 서부극들을 직접 찍고, 연기까지 할 정도로 영화에 열정적이었죠.
이 과정에서 둘은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빛을 조절할 수 있는 조명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항공기 엔진을 개조한 이동식 발전기, 전구로 작동되는 조명, 반사판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해 시장에 내놓았죠. 1930년대에는 촬영자가 실제로 찍히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카메라도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화 촬영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발명한 거예요.
아리의 창업자들은 ‘창작자의 자유’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 자료 출처 premiumbeat
영화 제작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고 싶었던 아리의 제품들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불편하다고 여겼지만, 꾹 참았던 것들을 정확하게 해결했으니까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본사가 폭격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종전 직후 재건을 시작해 10년 만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공격적으로 카메라와 조명의 한계를 밀어붙였죠. 1950년대 경주용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아보기도 하고, 60년대에는 화질은 유지하면서 손으로 들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아리의 제품들은 ‘매드 맥스’, ‘로보캅’, ‘택시 드라이버’, ‘풀 메탈 재킷’ 등 수많은 명작들의 제작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남다른 기술력으로 디지털 시대에도 선두를 지킨 아리 / 자료 출처 Green Film Shooting
디지털 시대에도 아리는 혁신을 이끌어왔어요. 2003년 ‘아리플렉스(ARRIflex)’ 디지털 카메라, 2005년 무선으로 여러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놓는 등 최신 기술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죠. 이 과정에서 축적한 고객 피드백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010년에는 알렉사(ALEXA)라는 영화용 카메라 시리즈를 출시해 크게 히트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가 알렉사로 촬영됐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지금도 아리의 푸른색 조명갓은 ‘최고의 조명’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꼽힙니다 / 자료 출처 ARRI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브랜드 차원의 일관성이었습니다. 창업자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에 공감하고, 사용하기 쉬운 고품질 장비로 그들의 열정을 실현한다는 게 아리의 철학이죠.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오히려 기술 투자를 늘릴 정도로, 아리는 지금도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지지하며 업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05 DJI : '드론계의 애플'이 개척한 영화 촬영의 새로운 관점
2009년 창업해 순식간에 세계 드론업계를 평정한 DJI / 자료 출처 Techradar
중국 심천에 본사를 둔 DJI는 2024년 6월 기준으로 전 세계 소비자 드론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DJI의 야망은 드론에 그치지 않았죠. 영화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건 2015년부터인데요. 당시 미국 경쟁사였던 3DR이 DJI의 압도적인 제품 로드맵을 견디지 못하고 하드웨어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DJI는 독주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후 DJI는 단순 드론 제조사 이상으로, 영화 촬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가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높은 수준의 드론 기술로, DJI는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촬영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 자료 출처 DJI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베터 콜 사울’, ‘왕좌의 게임’ 등 명작 드라마들에 DJI 드론 기술이 쓰이면서 2017년 에미상 기술 및 엔지니어링 부문을수상했거든요. 같은 해에 180년 역사의 스웨덴 카메라 브랜드, 핫셀블라드(Hasselblad)를 인수한 소식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부터 비틀즈 멤버들의 앨범 커버까지, 역사적인 순간들을 담은 기업이 신생 드론 브랜드의 품에 안긴 거니까요. 덕분에 DJI는 기술력에 장인정신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까지 결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드론으로 축적한 기술을 촬영장비에도 적용해 영역을 확대 중인 DJI / 자료 출처 Viewpoints DJI
하지만 DJI는 드론에만 안주하지 않고, 영화 촬영 장비 전반으로 분야를 확장했습니다.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잡아주는 안정화 기술을 짐벌(gimbal)에도 적용한 거죠. 2014년부터 영화 촬영 장비 업계에 도전한 DJI는 2018년에는 한손용 짐벌, 2020년대에는 짐벌과 촬영용 카메라가 결합된 시스템 등 내놓는 제품들마다 극찬을 받았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 뮤직비디오, 1인 크리에이터 시장까지 진출했죠. 올해 4월에는 드론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 공식 촬영용 장비로 인정받는 등, DJI는 영화 촬영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DJI는 '드론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그냥 얻은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술과 사용성의 균형을 고민했고, 헬리콥터나 크레인이 필요했던 장면을 손바닥만한 드론으로도 찍을 수 있다는 기능성으로 구현했죠. 본사 인력 70%가 R&D 부서에 속해있는 환경을 바탕으로, DJI는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5개 브랜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산업을 혁신해왔습니다. 박물관 전시용 기술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필수 요소로 만든 IMAX부터, 드론과 짐벌로 영화 촬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DJI까지 - 모두가 '더 나은 영화 경험'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죠.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 혁신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RRI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고, Dolby는 음향을 넘어 전체적인 극장 경험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RED는 니콘에 인수된 후에도 혁신을 이어가고 있고요.
영화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특별한 분야입니다. 이 브랜드들은 단순히 장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죠. 앞으로도 이들이 만들어갈 '극장의 마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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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터는 이 링크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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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브랜드 이야기
👉🏻 #234 대륙의 브랜딩은 실수가 아닌 실력
👉🏻 #205 기록의 전쟁 올림픽, 한 발 더 앞서게 하는 스포츠웨어 브랜드
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고유한 메시지와 철학으로,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브랜드와 사람을 담는 에디터입니다. 뉴닉, 폴인(fol:in), 원티드, TMI.FM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AI 시대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항해 중입니다.
editor | BemyB
💡고민과 꾸준함의 상징, 새벽 2시 50분💡

새벽 2시 50분까지 마감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을 9인의 콘텐츠 기획자들.
마이비레터가 250호를 맞이하여 그동안 꾸준히 달려온 2,129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고자, 하나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고민한 순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콘텐츠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실패와 고민을 묻고 답합니다.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9인은 과연 어떤 고민과 마음으로 오늘도 묵묵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을까요?
위 배너를 클릭하여 마이비레터 250호에서 그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콘텐츠 전문가 9명>
컨셉진 | 김경희 편집장
북스톤 | 김은경 대표
코스모폴리탄 | 김주연 편집장
아침 | 남도연 에디터
폴인 | 도헌정 팀장
일러스트레이터 | 설동주 작가
시티호퍼스 | 이동진 대표
매거진 C | 전은경 디렉터
에피케 | 홍유진 대표
* 이름의 ㄱㄴㄷ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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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간 1,000여 개의 브랜드의 스토리를 발굴해 온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 비마이비는 하나의 브랜드를 깊이 다루거나, 하나의 주제를 넓게 다루며 브랜드를 큐레이션하고, 사람을 만나고, 매월 이달의 브랜드를 선정합니다.
이번 주의 마이비레터에서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특별한 분야, 영화 산업을 발전시킨 다섯 브랜드에 대해 다룹니다. 더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술을 혁신해 온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아요.
요즘 극장 가보셨나요? 예전처럼 "1관에서 봐요."라고 말하기 애매해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맥스관', '돌비관'처럼 이름이 붙어 있죠. 각각의 이름에는 단순히 마케팅 용어가 아닌, 영화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은 기술 혁신이 숨어 있습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요즘, 우리는 여전히 극장을 찾습니다. 극장이어서 가능한 압도적 영상미, 영화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음향 효과는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데요. 이렇게 ‘시네마틱한’ 경험 뒤에는 최소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게 기술을 연마해 온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영화 산업은 예술적 가치와 기술적 성취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렇기에 막대한 돈이 오가고, 수많은 브랜드가 경쟁하죠. 그렇게 치열한 시간의 시험을 견딘 브랜드들은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왔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2D에서 3D로, 거대한 극장용 카메라에서 드론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극장의 마법'을 만드는 데 이바지해 왔죠.
이번에 소개할 5개 브랜드는 단순한 장비 제조사들이 아닙니다. 감독들과 배우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관객들의 삶을 바꿔놓을 경험을 선사하는 파트너들이죠. 1세기 넘게 업계를 책임진 베테랑부터 드론으로 영화라는 콘텐츠의 판도를 바꾼 당찬 도전자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산업을 혁신해 온 5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01 IMAX : 박물관에서 블록버스터로, '거대한 경험'의 대명사가 되다
‘사람이 볼 수 있는(eye) 최대한(max)을 보여준다’라는 뜻을 담은 아이맥스(IMAX)는 1967년, 캐나다 엔지니어 윌리엄 쇼(William Shaw)가 처음 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상영할 영상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죠. 윌리엄은 기술 개발을 의뢰한 다른 영화 제작자들과 야심 차게 아이맥스를 브랜드화했지만, 25년 넘게 ‘전시용 기술’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촬영 비용이 워낙 비쌌고, 규격에 맞는 상영관도 적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1994년,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월스트리트 투자자이자 M&A 전문가, 리처드 겔폰드(Richard Gelfond)가 아이맥스를 인수한 것이죠. 겔폰드는 영화 산업은 잘 몰랐지만, 사업 감각은 탁월했습니다. 학창 시절 스포츠 월간지를 발행해 2만 부 넘게 팔았을 정도였죠. 그런 그에게 아이맥스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지구상 최고의 영화 경험’이었습니다.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1998년 아이맥스 영화를 직접 제작했지만 흥행에서 참패했고, 2001년에는 주가도 폭락했죠. 하지만 겔폰드는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며, 차근차근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했습니다.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을 권하는 대신, 기존 영화를 아이맥스 버전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어필했죠. 2006년부터는 극장에 헐값으로 아이맥스 시스템을 설치해 줬습니다. 그 대신 해당 극장에 수수료를 받으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죠. 할리우드 콘텐츠의 흥행과 아이맥스만의 경험이 연동되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 2008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 2009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엄청난 흥행을 터뜨리며 아이맥스도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두 작품의 성공을 보면서 다른 제작자들도 아이맥스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이후에도 아이맥스는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 맞춘 아이맥스 레이저(IMAX with LASER), OTT 콘텐츠를 아이맥스 화면 비율로 확장하는 아이맥스 인헨스드(IMAX Enhanced) 등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 중입니다.
이제 IMAX는 단순한 상영 포맷이 아닌, 프리미엄 영화 경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89개 나라에 1,821개의 아이맥스 상영관이 운영 중이죠. 교육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시작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필수 요소가 된 아이맥스는 '더 크고, 더 몰입감 있는' 영화 경험이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02 Dolby : 영화관을 '몰입의 공간'으로 진화시킨 음향의 마법사
지금은 돌비 시네마로 더 익숙하지만, 사실 돌비의 시작은 오디오 연구소였습니다. 1965년 미국 공학자 레이 돌비(Ray Dolby) 박사가 고음질의 오디오 테이프 제작을 목표로 설립했죠. 사실 레이는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고, 1956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테이프 레코더를 개발하는 등 이전부터 업계에서 두각을 보였는데요. 인도에서 UN 기술 고문으로 일하던 와중에 ‘큰 소리와 작은 소리로 음성을 분리하면, 잡음은 줄이고 음악과 목소리는 깨끗하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잡음 제거(NR)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70년대에는 가정용 오디오에도 적용되며 이름을 알렸죠.
돌비가 극장까지 영역을 넓힌 건 1975년이었습니다. 좌우에서만 음향을 내보내던 기존의 스테레오 시스템에, 중앙과 후방 채널을 추가한 ‘돌비 스테레오(Dolby Stereo)’를 만든 거죠. 그의 기술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스타워즈’ 등에도 사용되며, 돌비는 현장감 넘치는 오디오 기술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82년에는 가정용에 적합하게 개조한 ‘돌비 서라운드(Dolby Surround)’도 선보였어요.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 미국의 하만 카돈(Harman/Kardon) 같은 세계적인 업체들도 돌비의 기술을 사용할 정도였죠. 1990년대에는 디지털 시대에 맞춘 솔루션을 선보이며, 글로벌 극장 사운드를 책임지는 거목이 되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돌비는 영화 음향의 패러다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넓혔습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가상의 3D 공간에서 어떤 소리가 어디에서 날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를 선보였거든요. 스피커 수나 위치와 상관없이, 제작자 의도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 기술을 적용한 2013년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아카데미 음악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등 사운드 관련 분야에서 대거 수상하기도 했어요. 돌비 기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였죠.
이제 돌비의 다음 목적지는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물론 넷플릭스, 디즈니,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모든 플랫폼에 진출하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에, 올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어 더빙판에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적용하는 등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60년 넘게 세계 최고의 지위를 지켜왔지만, 돌비는 지금도 ‘현장감 있는 음향 = 돌비’라는 공식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03 RED Digital Cinema : 선글라스 기업가가 일으킨 디지털 영화 혁명
2009년 영화 ‘국가대표’와 2010년 KBS 드라마 ‘추노’. 한국 최초로 레드 원(RED ONE)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들인데요. 특히 ‘추노’는 당시 경쟁작들보다 훨씬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대중들에게 ‘레드(RED)’라는 브랜드를 처음으로 각인시킨 계기였죠. 놀라운 건, 이 브랜드의 창업자가 선글라스로 유명한 오클리(Oakley)를 세운 짐 제너드(Jim Jannard)라는 거예요. 영화업계 관련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그는 어떻게 전 세계 영화 촬영장의 풍경을 바꿔놨을까요?
그 비결은 ‘영화라는 마법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다’라는 짐의 집착에 있었습니다. RED 이전에도 디지털 영화 카메라들은 있었지만, 장편 영화에 쓰기에는 품질이 떨어졌죠. 짐은 최고의 선글라스를 목표로 오클리를 시작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성능의 디지털 영화 카메라를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기존 필름 카메라보다 작으면서도 다루기 편하고, 4K 해상도를 담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RED는 2007년 레드 원(RED One)으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RED는 판매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2007년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판매했죠.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팔던 이전 카메라 회사들과 달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모든 부분을 레고처럼 모듈화해 제공했어요. 액정부터 손잡이, 나사까지 판매해 고객이 레고처럼 나만의 카메라를 조립할 수 있게 판매한 거죠. 온라인 직거래로 가격도 낮추고, 고객 편의성도 잡은 RED의 세일즈 전략은 영화 업계인들에게 경험한 적 없는 편리함을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기능성과 가격대로 RED는 영화 ‘마션’부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왕좌의 게임’ 등 명작들의 명장면을 책임져왔습니다.
이렇게 고품질 영상의 민주화를 선도해 온 RED는 2024년, 일본 카메라 브랜드니콘(Nikon)에 인수되며 니콘의 영화 카메라 사업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거래 금액만 8,700만 달러로, 글로벌 영화 기술 시장에서 큰 화제가 됐는데요. 이번 인수를 계기로 RED는 1인 크리에이터, 인디 영화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랜딩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프로 영상물 플랫폼으로 유명한 비메오(Vimeo)와 손잡고 단편영화 지원금 프로젝트를 런칭한 게 대표적이죠. 지난 7월 첫 수상작들이 발표돼, 제작자들은 각각 3만 달러의 상금과 RED 최신 제품 및 소프트웨어, 업계 선배들과의 멘토링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이처럼 레드는 영화 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해 왔습니다. 소니와 캐논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등장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는 와중에도 ‘합리적인 가격에 압도적인 품질의 결과물을 제공한다’는 핵심 가치를 놓지 않았죠. 그 덕분에 RED의 제품과 소프트웨어, 파일 형식이 업계의 표준이 된 것 아닐까요?
04 ARRI : 100년 넘게 영화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온 독일 명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빛 아닐까요? 빛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같은 배우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도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중요한 빛을 100년 넘게 책임져 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1917년,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한 독일의 두 젊은이가 창업한 아리(ARRI)입니다.
아리는 어릴 때부터 절친했던 아우구스트 아놀드(August Arnold), 로베르트 리히터(Robert Richter)가 설립했는데요. 지역 전기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둘은 필름 현상 전문가, 프리랜서 카메라맨 등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함께 창업한 후에는 여러 서부극들을 직접 찍고, 연기까지 할 정도로 영화에 열정적이었죠.
이 과정에서 둘은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빛을 조절할 수 있는 조명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항공기 엔진을 개조한 이동식 발전기, 전구로 작동되는 조명, 반사판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해 시장에 내놓았죠. 1930년대에는 촬영자가 실제로 찍히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카메라도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화 촬영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발명한 거예요.
영화 제작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고 싶었던 아리의 제품들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불편하다고 여겼지만, 꾹 참았던 것들을 정확하게 해결했으니까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본사가 폭격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종전 직후 재건을 시작해 10년 만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공격적으로 카메라와 조명의 한계를 밀어붙였죠. 1950년대 경주용 자동차에 카메라를 달아보기도 하고, 60년대에는 화질은 유지하면서 손으로 들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아리의 제품들은 ‘매드 맥스’, ‘로보캅’, ‘택시 드라이버’, ‘풀 메탈 재킷’ 등 수많은 명작들의 제작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리는 혁신을 이끌어왔어요. 2003년 ‘아리플렉스(ARRIflex)’ 디지털 카메라, 2005년 무선으로 여러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놓는 등 최신 기술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죠. 이 과정에서 축적한 고객 피드백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010년에는 알렉사(ALEXA)라는 영화용 카메라 시리즈를 출시해 크게 히트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가 알렉사로 촬영됐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브랜드 차원의 일관성이었습니다. 창업자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에 공감하고, 사용하기 쉬운 고품질 장비로 그들의 열정을 실현한다는 게 아리의 철학이죠.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오히려 기술 투자를 늘릴 정도로, 아리는 지금도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지지하며 업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05 DJI : '드론계의 애플'이 개척한 영화 촬영의 새로운 관점
중국 심천에 본사를 둔 DJI는 2024년 6월 기준으로 전 세계 소비자 드론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DJI의 야망은 드론에 그치지 않았죠. 영화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건 2015년부터인데요. 당시 미국 경쟁사였던 3DR이 DJI의 압도적인 제품 로드맵을 견디지 못하고 하드웨어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DJI는 독주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후 DJI는 단순 드론 제조사 이상으로, 영화 촬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가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베터 콜 사울’, ‘왕좌의 게임’ 등 명작 드라마들에 DJI 드론 기술이 쓰이면서 2017년 에미상 기술 및 엔지니어링 부문을수상했거든요. 같은 해에 180년 역사의 스웨덴 카메라 브랜드, 핫셀블라드(Hasselblad)를 인수한 소식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부터 비틀즈 멤버들의 앨범 커버까지, 역사적인 순간들을 담은 기업이 신생 드론 브랜드의 품에 안긴 거니까요. 덕분에 DJI는 기술력에 장인정신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까지 결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DJI는 드론에만 안주하지 않고, 영화 촬영 장비 전반으로 분야를 확장했습니다.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잡아주는 안정화 기술을 짐벌(gimbal)에도 적용한 거죠. 2014년부터 영화 촬영 장비 업계에 도전한 DJI는 2018년에는 한손용 짐벌, 2020년대에는 짐벌과 촬영용 카메라가 결합된 시스템 등 내놓는 제품들마다 극찬을 받았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 뮤직비디오, 1인 크리에이터 시장까지 진출했죠. 올해 4월에는 드론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 공식 촬영용 장비로 인정받는 등, DJI는 영화 촬영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DJI는 '드론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그냥 얻은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술과 사용성의 균형을 고민했고, 헬리콥터나 크레인이 필요했던 장면을 손바닥만한 드론으로도 찍을 수 있다는 기능성으로 구현했죠. 본사 인력 70%가 R&D 부서에 속해있는 환경을 바탕으로, DJI는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5개 브랜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산업을 혁신해왔습니다. 박물관 전시용 기술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필수 요소로 만든 IMAX부터, 드론과 짐벌로 영화 촬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DJI까지 - 모두가 '더 나은 영화 경험'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죠.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 혁신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RRI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고, Dolby는 음향을 넘어 전체적인 극장 경험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RED는 니콘에 인수된 후에도 혁신을 이어가고 있고요.
영화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특별한 분야입니다. 이 브랜드들은 단순히 장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죠. 앞으로도 이들이 만들어갈 '극장의 마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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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비레터 객원에디터 | 최진수
고유한 메시지와 철학으로,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브랜드와 사람을 담는 에디터입니다. 뉴닉, 폴인(fol:in), 원티드, TMI.FM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AI 시대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항해 중입니다.
editor | BemyB
💡고민과 꾸준함의 상징, 새벽 2시 50분💡
새벽 2시 50분까지 마감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을 9인의 콘텐츠 기획자들.
마이비레터가 250호를 맞이하여 그동안 꾸준히 달려온 2,129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고자, 하나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고민한 순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콘텐츠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실패와 고민을 묻고 답합니다.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9인은 과연 어떤 고민과 마음으로 오늘도 묵묵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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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전문가 9명>
컨셉진 | 김경희 편집장
북스톤 | 김은경 대표
코스모폴리탄 | 김주연 편집장
아침 | 남도연 에디터
폴인 | 도헌정 팀장
일러스트레이터 | 설동주 작가
시티호퍼스 | 이동진 대표
매거진 C | 전은경 디렉터
에피케 | 홍유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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