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1,000여 개의 브랜드의 스토리를 발굴해 온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 비마이비는 하나의 브랜드를 깊이 다루거나, 하나의 주제를 넓게 다루며 브랜드를 큐레이션하고, 사람을 만나고, 매월 이달의브랜드를 선정합니다.
이번 주의 마이비레터에서는, 빅뱅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섹시한 성인식을 징그럽지만 구상 중이다.” 작년 단독 콘서트 무대에 오른 지드래곤이 팀의 20주년을 앞두고 던진 말이에요. 농담처럼 흘려보낼 수도 있는 한마디였지만, 이 문장엔 빅뱅의 스무 번째 해가 그대로 담겨 있어요. 20년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시간이고, 빅뱅은 그 성인식을 남들처럼 우아하게 치를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는 대신 이전보다 더 화려한 모습을 선보일 것을 예고했죠.
빅뱅이 지나온 20년 동안 K팝을 둘러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빅뱅이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K팝 아티스트의 글로벌 진출은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음악 차트와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K팝 아티스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철없는 짓 취급을 받던 ‘덕질’은 하나의 문화가 됐고, ‘K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빅뱅 또한 팀의 구성이나 활동 방식 등이 달라지기도 했죠. 그럼에도 빅뱅은 2026년,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왔습니다.
20주년을 맞아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은, 다른 장수 그룹과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역대급 규모의 월드투어부터 4년 만의 신곡 발표,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미디어 전시까지. 추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화려한 스무 살의 시작을 알렸죠. 징그럽지만, 거부할 수 없이 섹시하게 돌아온 빅뱅. 이번 마이비레터에서는 빅뱅의 20주년 활동을 중심으로, 아티스트 브랜드가 ‘N주년 마케팅’을 선보이는 방식을 살펴볼게요.
01 20년의 시간, 추억 팔이를 거부하다
빅뱅은 새로운 무대로 20주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바로 지난 4월 열린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었는데요. 2017년 <라스트 댄스> 투어 이후 약 9년 만에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오른 정식 무대였죠.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17곡을 선보인 빅뱅 / 자료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빅뱅은 코첼라의 대형 무대인 아웃도어 시어터에서 약 60분간 공연을 펼쳤습니다. ‘Fantastic Baby’, ‘뱅뱅뱅’, ‘하루하루’ 같은 메가 히트곡과 멤버별 솔로 무대가 현장을 채웠고, 무대에서 월드투어까지 직접 예고했어요.
빅뱅이 코첼라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영상 / 자료 출처 태양 공식 유튜브(@TAEYANG_OFFICIAL)
발표된 월드투어의 이름은 ‘XX : COSMOS’. 약 9년 만에 성사되는 투어예요.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경기 고양 종합운동장 3회 공연은 추가 좌석을 포함해 전석 매진됐고, 이후 전 세계 19개 도시에서 총 33회로 이어집니다.투어 로고에도 세계관이 담겼어요. 무한대(∞) 형상에 데뷔 20주년을 뜻하는 ‘20’과 끝없이 확장한다는 의미를 겹쳐 넣고, 여기에 연결, 관계, 지속성을 뜻하는 ‘COSMOS’를 더했습니다.
20주년 월드투어의 서막을 알리는 로고 모션 / 자료 출처 YG엔터테인먼트
여기에 흥미로운 건, 이 화제성이 특정 세대의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과거 빅뱅의 음악과 패션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며 세월을 함께 해온 세대뿐 아니라, 현재의 1020세대 역시 빅뱅의 콘텐츠와 스타일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코첼라 무대에서 상의를 벗은 태양의 퍼포먼스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가죽 재킷 룩과 엮여 밈으로 번진 해프닝까지, 빅뱅은 현재 세대의 피드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어요.
코첼라 무대 후 젠슨 황 ‘비교짤’로 글로벌 밈의 주인공이 된 태양 / 자료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빅뱅은 20주년의 첫 장을 과거의 영광이 아닌, 새로운 노래와 퍼포먼스로 채웠습니다. 매진을 기록한 투어와 지금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앞세워 20주년을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만들어 가고 있죠. 흔히 브랜드의 N주년이 지난 성과를 되짚고 자축하는 데 머무는 것과 달리, 빅뱅은 이를 신곡과 새 투어를 선보이는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오래된 브랜드의 유산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을 때보다, 지금의 결과물로 이어질 때 더욱 선명한 힘을 발휘하니까요.
02 침묵으로 입소문을 만든다, 빅뱅식 대화법
그 시절의 빅뱅이 아니라,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빅뱅. 이번 20주년 커뮤니케이션에서 눈에 띄는 건 오랜 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이름을 반복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BIGBANG 20TH ANNIVERSARY를 기념하는 글로벌 팬덤 플랫폼 비스테이지(b.stage) / 자료 출처 비스테이지
11년 만에 공식 팬클럽 ‘V.I.P 6기’ 모집을 알리며 글로벌 팬덤 플랫폼 비스테이지에 커뮤니티를 여는 과정이 대표적이에요. 커뮤니티 오픈 시각을 데뷔일인 8월 19일에 맞춰 ‘오후 8시 19분’으로 정했고, 8월 19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대규모 팬 이벤트를 예고했습니다. 긴 설명 대신, 팬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이스터에그처럼 곳곳에 숨겨두어 해석하는 재미와 함께 화제성을 끌어올린 거예요.
빅뱅 20주년 기념 공식 인스타그램 / 자료 출처 빅뱅 공식 인스타그램
직접적인 설명보다 팬들의 해석을 불러온 장면은 멤버와의 관계에서도 묻어납니다. 새로 연 공식 인스타그램(@bigbang_2xx6)에서 빅뱅은 이미 팀을 떠난 멤버 탑을 팔로우해 화제를 모았어요. 탑이 솔로곡으로 작별을 고했음에도 말이죠. 코첼라 무대에서도 탑의 음성 파트를 그대로 남겨 두었고, 지드래곤은 그 대목에서 하늘을 향해 경례를 보냈습니다.
데뷔 20주년 맞아 월드 투어를 개최한 빅뱅 / 자료 출처 지드래곤 공식 인스타그램
이런 장면들은 팬들 사이에서 여러 추측과 해석을 낳기도 합니다. 4인 체제 완전체 복귀를 암시하는 걸까, 아니면 떠난 멤버를 향한 아름다운 예우일까. 하나의 장면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쏟아졌죠. 보도자료 한 장으로 못 박았다면 간단했을 일이지만, 빅뱅은 정답지를 건네는 대신 빈칸을 남겼어요. 그리고 그 빈칸을 팬들이 각자의 해석으로 채우면서 다가올 20주년을 더욱 기대할 수 있도록로 만들었어요.
결점 하나라도 매끄럽게 포장하기 바쁜 브랜드가 많은 시대에, 빅뱅은 오히려 여백을 만들어요. 다 설명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를 파고들고, 그 해석이 다시 입소문이 되어 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20년간 축적된 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브랜드인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빅뱅다운 모습입니다.
03 서로 다른 세 개의 축, 더 견고해진 지금의 빅뱅
20년이라는 묵직한 시간을 지나, 빅뱅은 이제 세 명의 멤버로 무대에 섭니다. 빈자리가 생긴 만큼 브랜드의 덩치나 파급력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 짐작하기 쉽겠지만, 흥미롭게도 지금의 빅뱅은 장수 브랜드가 갖춰야 할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밸런스를 구축해 냈어요.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 흔들리지 않는 본질, 그리고 대중과 호흡하는 친근함까지. 지드래곤, 태양, 대성. 이들은 아이돌 그룹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어 짊어지며 여전히 빅뱅이란 브랜드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샤넬의 2026 공방 컬렉션에 참석한 지드래곤 / 자료 출처 샤넬
가장 먼저 지드래곤은 여전히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대중의 굳건한 동경의 대상이 되어주며, idol(우상)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고 있어요. 카이스트 교수로 강단에 오르고, ‘영원한’ 샤넬의 엠버서더로서 전 세계 패션위크를 활보하는 지드래곤의 모습은 그룹 공백기에도 빅뱅의 아우라를 살아있게 만들었죠. 대중이 빅뱅이란 이름에 기대하는 힙한 프리미엄 가치를 최전선에서 보여주며 브랜드가 결코 낡지 않도록 지켜내고 있어요.
올해 5월 선보인 태양의 솔로 앨범 [QUINTESSENCE] / 자료 출처 태양 공식 SNS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결국 본질이 단단해야 합니다. 태양은 그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책임집니다. 쉼 없이 앨범을 내고 음악 행보를 이어가며, 대중이 빅뱅에게 기대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밀도를 계속 채워 넣죠. 그룹의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솔로로도 자기 음악을 넓혀 가는 성실함이, 빅뱅이라는 이름의 음악적 완성도가 여전히 건재함을 뒷받침해요.
개인 유튜브 채널 ‘집대성’을 운영하고 있는 대성 / 출처: 유튜브 채널 ‘집대성’ (@ZIP_DS)
이 트라이앵글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멤버 대성입니다. 보통 연차가 쌓이고 하이엔드 이미지가 굳어지면 대중과 아티스트와 묘한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대성은 유튜브 채널 ‘집대성’ 등을 통해 특유의 유쾌하고 솔직한 소통으로 대중과의 틈새를 허물고 있어요. 유니콘처럼 만나기 힘든 스타가 아니라, 언제든 곁에 있다는 친근함을 꾸준히 불어넣고 있는 거죠.
결국 세 사람은 트렌드, 아티스트, 친근함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나씩 맡아 빅뱅을 세 방향에서 떠받치고 있어요. 브랜드가 위기에 크게 흔들리는 건, 대개 한 사람의 얼굴이나 하나의 메시지에 모든 걸 몰아 둔 탓이에요. 그 하나가 삐끗하면 브랜드 전체가 멈춰 서니까요. 반대로 빅뱅은 핵심 가치를 셋으로 나눠 둔 덕분에, 한 명이 잠시 활동을 쉬어도 다른 얼굴이 빅뱅이라는 이름을 계속 노출시키죠. 멤버 한 명의 공백이 그룹 전체의 공백으로 번지지 않는 이유예요.
수많은 위기와 변화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유연하게 나누며 브랜드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것. 빅뱅이란 이름이 고여있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흐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원동력이에요.
04 기술로 다시 만나는, 팬과 함께 쌓은 20년
여전히 끈끈함을 과시하고 있는 세 멤버 / 자료 출처 대성 공식 SNS
앞선 세 멤버가 20년 차 브랜드의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긴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간 팬들과 축제를 벌일 차례입니다. 이들이 2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N주년을 맞이한 브랜드가 대중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보통의 기업들이 10주년이나 20주년을 맞으면 숫자를 앞세웁니다. 업계 1위와 같은 굵직한 성과를 조명하고, 감사의 의미를 담은 할인 행사나 기념 굿즈를 선보이죠. 하지만 브랜드의 성취에만 집중하면 정작 그 긴 시간을 함께해온 고객의 이야기는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오랜 시간 팬들과 함께 성장해 온 K팝 그룹들은 여기서 다른 문법을 택합니다. 자신들의 활동 기록만 나열하는 대신, 팬들이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N주년의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것이죠.
15주년을 기념해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 (MY SHINee WORLD)>를 개봉한 샤이니 / 자료 출처 메가박스
이를테면 소녀시대는 15주년 팬미팅에서 팬들이 처음 입덕한 순간을 적은 ‘입덕 다이어리’를 멤버들이 직접 읽어 주었고, 샤이니는 15주년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를 ‘팬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15년’으로 구성했어요. 슈퍼주니어는 20주년 데뷔일에 남산서울타워를 비롯한 세계 랜드마크를 팬덤 상징색으로 물들이며 팬을 역사를 함께 쓴 파트너로 대접했죠. 세 그룹의 방식은 다르지만, N주년을 아티스트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팬과 함께 보낸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로 만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빅뱅은 팬덤과의 시간에 ‘기술’을 더했습니다. 지난 6월 비스테이지에서 진행한 ‘STILL ALIVE’ 프로젝트가 출발점이었죠. 팬들이 서랍 속에 간직해 온 낡은 첫 콘서트 티켓이나 손때 묻은 뱅봉(응원봉) 사진을 꺼내 사연과 함께 공유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2주 만에 빅뱅과 팬들과 있었던 다채로운 추억들이 모였습니다.
잠실과 종로를 잇는 20주년 미디어 전시회 ‘COSMOS’ / 자료 출처 글로벌 엔터테크 기업 크리에이티브멋(MUT)
팬들과 함께한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회고하는 시도는 미디어 전시 ‘COSMOS’로 이어집니다. 빅뱅의 지난 20년을 담은 음악과 영상 기록을 홀로그램과 XR·VR, 3D 모션 그래픽 등의 기술로 재구성한 몰입형 전시예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프리퀄 전시를 선보인 뒤,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을 잇는 지하 공간에서 본 전시를 이어갑니다. 팬들은 전시 공간을 거닐며 지난 20년의 장면을 보고 듣고, 익숙한 기록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죠.
이러한 기술적인 실험은 멤버의 개인 활동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지드래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HOME SWEET HOME’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자신의 음성과 음원에 AI로 구현한 미디어아트를 결합해 우주로 송출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COSMOS와 직접 연결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익숙한 음악을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다른 경험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죠.
‘STILL ALIVE’ 프로젝트가 팬들이 간직한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면, ‘COSMOS’는 빅뱅이 쌓아온 기록을 기술로 새롭게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빅뱅은 20주년을 과거의 성과를 나열하는 프로모션에 머물게 하지 않고, 팬과 함께한 시간을 다시 보고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결국 N주년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오래된 기록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팬들이 그 기록에 다시 참여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에요.
05 징그럽지만 섹시하게, 어른이 된 빅뱅의 성인식
다시 서두의 그 말로 돌아와 볼게요. “섹시한 성인식을 징그럽지만 구상 중이다.” 지난해 단독 콘서트에서 지드래곤이 꺼낸 이 한마디는 빅뱅의 20주년을 꽤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20년 동안 쌓인 노래와 무대, 팬들과의 기억은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지만, 빅뱅은 그 시간을 전시하는 대신 2026년의 자신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데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2026년 코첼라 무대 위에서 서로를 껴안는 세 멤버의 모습 / 자료 출처 지드래곤 공식 인스타그램
빅뱅은 20주년을 맞아 지나온 시간을 차례로 돌아보기보다 신곡 ‘BiiG’과 월드투어로 지금의 빅뱅을 자신있게 보여줍니다.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장면을 곳곳에 남겨 이야깃거리를 만들었고 지드래곤과 태양, 대성은 각자의 활동으로 빅뱅의 존재감을 이어갔죠. 팬들이 간직해 온 추억은 ‘STILL ALIVE’를 통해 다시 모았고, 지난 20년의 음악과 영상은 ‘COSMOS’라는 전시로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이 활동들의 공통점은 20주년을 회고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팬들이 빅뱅답다고 느끼는 음악과 추억은 남겨두되, 이를 보여주는 무대와 콘텐츠는 지금의 방식에 맞게 바꿨어요. 20주년을 과거의 성과를 정리하는 행사보다 앞으로도 빅뱅이라는 이름을 이어가기 위한 계기로 삼은 것이죠.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밖의 브랜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N주년을 준비할 때 브랜드 실무자들은 ‘무엇을 기념할까’에 앞서 세 가지를 물어야 해요.
1) 앞으로도 지켜야 할 우리 브랜드의 핵심은 무엇인지 2) 고객은 우리와 어떤 기억을 나누고 있는지 3) 그 기억을 지금의 고객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다시 보여줄 것인지 말이에요.
과거를 모두 꺼내 보이는 것보다,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가치를 골라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결국 N주년은 브랜드가 지나온 시간을 자랑하는 날인 동시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날입니다. ‘20년이나 됐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빅뱅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빅뱅이 자신의 스무 살을 ‘징그럽지만 섹시하게’ 기념하는 방법입니다.
지난 8년간 1,000여 개의 브랜드의 스토리를 발굴해 온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 비마이비. 비마이비는 하나의 브랜드를 깊이 다루거나, 하나의 주제를 넓게 다루며 브랜드를 큐레이션하고, 사람을 만나고, 매월 이달의브랜드를 선정합니다.
이번 주의 마이비레터에서는, 빅뱅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섹시한 성인식을 징그럽지만 구상 중이다.” 작년 단독 콘서트 무대에 오른 지드래곤이 팀의 20주년을 앞두고 던진 말이에요. 농담처럼 흘려보낼 수도 있는 한마디였지만, 이 문장엔 빅뱅의 스무 번째 해가 그대로 담겨 있어요. 20년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시간이고, 빅뱅은 그 성인식을 남들처럼 우아하게 치를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는 대신 이전보다 더 화려한 모습을 선보일 것을 예고했죠.
빅뱅이 지나온 20년 동안 K팝을 둘러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빅뱅이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K팝 아티스트의 글로벌 진출은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음악 차트와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K팝 아티스트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철없는 짓 취급을 받던 ‘덕질’은 하나의 문화가 됐고, ‘K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빅뱅 또한 팀의 구성이나 활동 방식 등이 달라지기도 했죠. 그럼에도 빅뱅은 2026년,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왔습니다.
20주년을 맞아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은, 다른 장수 그룹과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역대급 규모의 월드투어부터 4년 만의 신곡 발표,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미디어 전시까지. 추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화려한 스무 살의 시작을 알렸죠. 징그럽지만, 거부할 수 없이 섹시하게 돌아온 빅뱅. 이번 마이비레터에서는 빅뱅의 20주년 활동을 중심으로, 아티스트 브랜드가 ‘N주년 마케팅’을 선보이는 방식을 살펴볼게요.
01 20년의 시간, 추억 팔이를 거부하다
빅뱅은 새로운 무대로 20주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바로 지난 4월 열린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었는데요. 2017년 <라스트 댄스> 투어 이후 약 9년 만에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오른 정식 무대였죠.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서 17곡을 선보인 빅뱅 / 자료 출처 YG 엔터테인먼트
빅뱅은 코첼라의 대형 무대인 아웃도어 시어터에서 약 60분간 공연을 펼쳤습니다. ‘Fantastic Baby’, ‘뱅뱅뱅’, ‘하루하루’ 같은 메가 히트곡과 멤버별 솔로 무대가 현장을 채웠고, 무대에서 월드투어까지 직접 예고했어요.
빅뱅이 코첼라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영상 / 자료 출처 태양 공식 유튜브(@TAEYANG_OFFICIAL)
발표된 월드투어의 이름은 ‘XX : COSMOS’. 약 9년 만에 성사되는 투어예요.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경기 고양 종합운동장 3회 공연은 추가 좌석을 포함해 전석 매진됐고, 이후 전 세계 19개 도시에서 총 33회로 이어집니다.투어 로고에도 세계관이 담겼어요. 무한대(∞) 형상에 데뷔 20주년을 뜻하는 ‘20’과 끝없이 확장한다는 의미를 겹쳐 넣고, 여기에 연결, 관계, 지속성을 뜻하는 ‘COSMOS’를 더했습니다.
20주년 월드투어의 서막을 알리는 로고 모션 / 자료 출처 YG엔터테인먼트
여기에 흥미로운 건, 이 화제성이 특정 세대의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과거 빅뱅의 음악과 패션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며 세월을 함께 해온 세대뿐 아니라, 현재의 1020세대 역시 빅뱅의 콘텐츠와 스타일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코첼라 무대에서 상의를 벗은 태양의 퍼포먼스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가죽 재킷 룩과 엮여 밈으로 번진 해프닝까지, 빅뱅은 현재 세대의 피드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어요.
코첼라 무대 후 젠슨 황 ‘비교짤’로 글로벌 밈의 주인공이 된 태양 / 자료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빅뱅은 20주년의 첫 장을 과거의 영광이 아닌, 새로운 노래와 퍼포먼스로 채웠습니다. 매진을 기록한 투어와 지금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앞세워 20주년을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만들어 가고 있죠. 흔히 브랜드의 N주년이 지난 성과를 되짚고 자축하는 데 머무는 것과 달리, 빅뱅은 이를 신곡과 새 투어를 선보이는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오래된 브랜드의 유산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을 때보다, 지금의 결과물로 이어질 때 더욱 선명한 힘을 발휘하니까요.
02 침묵으로 입소문을 만든다, 빅뱅식 대화법
그 시절의 빅뱅이 아니라,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빅뱅. 이번 20주년 커뮤니케이션에서 눈에 띄는 건 오랜 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이름을 반복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BIGBANG 20TH ANNIVERSARY를 기념하는 글로벌 팬덤 플랫폼 비스테이지(b.stage) / 자료 출처 비스테이지
11년 만에 공식 팬클럽 ‘V.I.P 6기’ 모집을 알리며 글로벌 팬덤 플랫폼 비스테이지에 커뮤니티를 여는 과정이 대표적이에요. 커뮤니티 오픈 시각을 데뷔일인 8월 19일에 맞춰 ‘오후 8시 19분’으로 정했고, 8월 19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대규모 팬 이벤트를 예고했습니다. 긴 설명 대신, 팬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이스터에그처럼 곳곳에 숨겨두어 해석하는 재미와 함께 화제성을 끌어올린 거예요.
빅뱅 20주년 기념 공식 인스타그램 / 자료 출처 빅뱅 공식 인스타그램
직접적인 설명보다 팬들의 해석을 불러온 장면은 멤버와의 관계에서도 묻어납니다. 새로 연 공식 인스타그램(@bigbang_2xx6)에서 빅뱅은 이미 팀을 떠난 멤버 탑을 팔로우해 화제를 모았어요. 탑이 솔로곡으로 작별을 고했음에도 말이죠. 코첼라 무대에서도 탑의 음성 파트를 그대로 남겨 두었고, 지드래곤은 그 대목에서 하늘을 향해 경례를 보냈습니다.
데뷔 20주년 맞아 월드 투어를 개최한 빅뱅 / 자료 출처 지드래곤 공식 인스타그램
이런 장면들은 팬들 사이에서 여러 추측과 해석을 낳기도 합니다. 4인 체제 완전체 복귀를 암시하는 걸까, 아니면 떠난 멤버를 향한 아름다운 예우일까. 하나의 장면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쏟아졌죠. 보도자료 한 장으로 못 박았다면 간단했을 일이지만, 빅뱅은 정답지를 건네는 대신 빈칸을 남겼어요. 그리고 그 빈칸을 팬들이 각자의 해석으로 채우면서 다가올 20주년을 더욱 기대할 수 있도록로 만들었어요.
결점 하나라도 매끄럽게 포장하기 바쁜 브랜드가 많은 시대에, 빅뱅은 오히려 여백을 만들어요. 다 설명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를 파고들고, 그 해석이 다시 입소문이 되어 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20년간 축적된 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브랜드인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빅뱅다운 모습입니다.
03 서로 다른 세 개의 축, 더 견고해진 지금의 빅뱅
20년이라는 묵직한 시간을 지나, 빅뱅은 이제 세 명의 멤버로 무대에 섭니다. 빈자리가 생긴 만큼 브랜드의 덩치나 파급력도 예전 같지 않을 거라 짐작하기 쉽겠지만, 흥미롭게도 지금의 빅뱅은 장수 브랜드가 갖춰야 할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밸런스를 구축해 냈어요.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 흔들리지 않는 본질, 그리고 대중과 호흡하는 친근함까지. 지드래곤, 태양, 대성. 이들은 아이돌 그룹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어 짊어지며 여전히 빅뱅이란 브랜드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샤넬의 2026 공방 컬렉션에 참석한 지드래곤 / 자료 출처 샤넬
가장 먼저 지드래곤은 여전히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대중의 굳건한 동경의 대상이 되어주며, idol(우상)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고 있어요. 카이스트 교수로 강단에 오르고, ‘영원한’ 샤넬의 엠버서더로서 전 세계 패션위크를 활보하는 지드래곤의 모습은 그룹 공백기에도 빅뱅의 아우라를 살아있게 만들었죠. 대중이 빅뱅이란 이름에 기대하는 힙한 프리미엄 가치를 최전선에서 보여주며 브랜드가 결코 낡지 않도록 지켜내고 있어요.
올해 5월 선보인 태양의 솔로 앨범 [QUINTESSENCE] / 자료 출처 태양 공식 SNS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결국 본질이 단단해야 합니다. 태양은 그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책임집니다. 쉼 없이 앨범을 내고 음악 행보를 이어가며, 대중이 빅뱅에게 기대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밀도를 계속 채워 넣죠. 그룹의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솔로로도 자기 음악을 넓혀 가는 성실함이, 빅뱅이라는 이름의 음악적 완성도가 여전히 건재함을 뒷받침해요.
개인 유튜브 채널 ‘집대성’을 운영하고 있는 대성 / 출처: 유튜브 채널 ‘집대성’ (@ZIP_DS)
이 트라이앵글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멤버 대성입니다. 보통 연차가 쌓이고 하이엔드 이미지가 굳어지면 대중과 아티스트와 묘한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대성은 유튜브 채널 ‘집대성’ 등을 통해 특유의 유쾌하고 솔직한 소통으로 대중과의 틈새를 허물고 있어요. 유니콘처럼 만나기 힘든 스타가 아니라, 언제든 곁에 있다는 친근함을 꾸준히 불어넣고 있는 거죠.
결국 세 사람은 트렌드, 아티스트, 친근함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나씩 맡아 빅뱅을 세 방향에서 떠받치고 있어요. 브랜드가 위기에 크게 흔들리는 건, 대개 한 사람의 얼굴이나 하나의 메시지에 모든 걸 몰아 둔 탓이에요. 그 하나가 삐끗하면 브랜드 전체가 멈춰 서니까요. 반대로 빅뱅은 핵심 가치를 셋으로 나눠 둔 덕분에, 한 명이 잠시 활동을 쉬어도 다른 얼굴이 빅뱅이라는 이름을 계속 노출시키죠. 멤버 한 명의 공백이 그룹 전체의 공백으로 번지지 않는 이유예요.
수많은 위기와 변화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유연하게 나누며 브랜드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것. 빅뱅이란 이름이 고여있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흐를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원동력이에요.
04 기술로 다시 만나는, 팬과 함께 쌓은 20년
여전히 끈끈함을 과시하고 있는 세 멤버 / 자료 출처 대성 공식 SNS
앞선 세 멤버가 20년 차 브랜드의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긴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간 팬들과 축제를 벌일 차례입니다. 이들이 2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N주년을 맞이한 브랜드가 대중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보통의 기업들이 10주년이나 20주년을 맞으면 숫자를 앞세웁니다. 업계 1위와 같은 굵직한 성과를 조명하고, 감사의 의미를 담은 할인 행사나 기념 굿즈를 선보이죠. 하지만 브랜드의 성취에만 집중하면 정작 그 긴 시간을 함께해온 고객의 이야기는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오랜 시간 팬들과 함께 성장해 온 K팝 그룹들은 여기서 다른 문법을 택합니다. 자신들의 활동 기록만 나열하는 대신, 팬들이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N주년의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것이죠.
15주년을 기념해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 (MY SHINee WORLD)>를 개봉한 샤이니 / 자료 출처 메가박스
이를테면 소녀시대는 15주년 팬미팅에서 팬들이 처음 입덕한 순간을 적은 ‘입덕 다이어리’를 멤버들이 직접 읽어 주었고, 샤이니는 15주년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를 ‘팬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15년’으로 구성했어요. 슈퍼주니어는 20주년 데뷔일에 남산서울타워를 비롯한 세계 랜드마크를 팬덤 상징색으로 물들이며 팬을 역사를 함께 쓴 파트너로 대접했죠. 세 그룹의 방식은 다르지만, N주년을 아티스트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팬과 함께 보낸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로 만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빅뱅은 팬덤과의 시간에 ‘기술’을 더했습니다. 지난 6월 비스테이지에서 진행한 ‘STILL ALIVE’ 프로젝트가 출발점이었죠. 팬들이 서랍 속에 간직해 온 낡은 첫 콘서트 티켓이나 손때 묻은 뱅봉(응원봉) 사진을 꺼내 사연과 함께 공유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2주 만에 빅뱅과 팬들과 있었던 다채로운 추억들이 모였습니다.
잠실과 종로를 잇는 20주년 미디어 전시회 ‘COSMOS’ / 자료 출처 글로벌 엔터테크 기업 크리에이티브멋(MUT)
팬들과 함께한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회고하는 시도는 미디어 전시 ‘COSMOS’로 이어집니다. 빅뱅의 지난 20년을 담은 음악과 영상 기록을 홀로그램과 XR·VR, 3D 모션 그래픽 등의 기술로 재구성한 몰입형 전시예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프리퀄 전시를 선보인 뒤,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을 잇는 지하 공간에서 본 전시를 이어갑니다. 팬들은 전시 공간을 거닐며 지난 20년의 장면을 보고 듣고, 익숙한 기록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죠.
이러한 기술적인 실험은 멤버의 개인 활동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지드래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HOME SWEET HOME’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자신의 음성과 음원에 AI로 구현한 미디어아트를 결합해 우주로 송출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COSMOS와 직접 연결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익숙한 음악을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다른 경험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죠.
‘STILL ALIVE’ 프로젝트가 팬들이 간직한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면, ‘COSMOS’는 빅뱅이 쌓아온 기록을 기술로 새롭게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빅뱅은 20주년을 과거의 성과를 나열하는 프로모션에 머물게 하지 않고, 팬과 함께한 시간을 다시 보고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결국 N주년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오래된 기록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팬들이 그 기록에 다시 참여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에요.
05 징그럽지만 섹시하게, 어른이 된 빅뱅의 성인식
다시 서두의 그 말로 돌아와 볼게요. “섹시한 성인식을 징그럽지만 구상 중이다.” 지난해 단독 콘서트에서 지드래곤이 꺼낸 이 한마디는 빅뱅의 20주년을 꽤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20년 동안 쌓인 노래와 무대, 팬들과의 기억은 쉽게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지만, 빅뱅은 그 시간을 전시하는 대신 2026년의 자신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데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2026년 코첼라 무대 위에서 서로를 껴안는 세 멤버의 모습 / 자료 출처 지드래곤 공식 인스타그램
빅뱅은 20주년을 맞아 지나온 시간을 차례로 돌아보기보다 신곡 ‘BiiG’과 월드투어로 지금의 빅뱅을 자신있게 보여줍니다.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장면을 곳곳에 남겨 이야깃거리를 만들었고 지드래곤과 태양, 대성은 각자의 활동으로 빅뱅의 존재감을 이어갔죠. 팬들이 간직해 온 추억은 ‘STILL ALIVE’를 통해 다시 모았고, 지난 20년의 음악과 영상은 ‘COSMOS’라는 전시로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이 활동들의 공통점은 20주년을 회고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팬들이 빅뱅답다고 느끼는 음악과 추억은 남겨두되, 이를 보여주는 무대와 콘텐츠는 지금의 방식에 맞게 바꿨어요. 20주년을 과거의 성과를 정리하는 행사보다 앞으로도 빅뱅이라는 이름을 이어가기 위한 계기로 삼은 것이죠.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밖의 브랜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N주년을 준비할 때 브랜드 실무자들은 ‘무엇을 기념할까’에 앞서 세 가지를 물어야 해요.
1) 앞으로도 지켜야 할 우리 브랜드의 핵심은 무엇인지
2) 고객은 우리와 어떤 기억을 나누고 있는지
3) 그 기억을 지금의 고객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다시 보여줄 것인지 말이에요.
과거를 모두 꺼내 보이는 것보다,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가치를 골라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결국 N주년은 브랜드가 지나온 시간을 자랑하는 날인 동시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날입니다. ‘20년이나 됐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빅뱅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빅뱅이 자신의 스무 살을 ‘징그럽지만 섹시하게’ 기념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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