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세션 : 60년 전통을 이어가는 일광전구는 왜 브랜드북을 출간했을까?

상품 상세 사진과 스펙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넘어서 브랜드 소개와 아카이빙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Identity)까지 서술하는 브랜드북이 최근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브랜드를 소개하는 목적으로 브랜드북을 출간하는 것일까요? 브랜드를 알릴 목적이라면 15초 광고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1962년, 대구에서 전업사(전기 기구 판매, 전기 가설을 업으로 하는 가게)로 시작해 현재까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긴 업력의 일광전구가 브랜드북을 출간했습니다. 브랜드북 제작에는 지식 콘텐츠 커뮤니티, 북저널리즘에서 론칭한 리테일 미디어 브랜드 bkjn이 함께 했습니다. 일광전구와 bkjn 에게도 첫 프로젝트였던 브랜드북 출간. 어떻게 시작하게 됐으며 무슨 내용을 담으려 했는지 이야기를 나눈 세션이었습니다.


김시연(이하 K) : 일광전구 마케팅 팀장 

이연대(이하 L) : 북저널리즘 (bkjn) 대표이사



일광전구는 1962년 대구시 서구의 작은 전업사로 시작했습니다. 김시연 마케팅 팀장의 할아버지자 창업주인 김만규 회장을 이어 현재 김홍도 대표가 운영한 지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김홍도 대표와 일을 함께 시작하여 근속연수가 40년이 된 직원도 상당히 많습니다.


초대 일광전구공업사 고 김만규 회장 / [자료 출처 일광전구]

WE MAKE LIGHT / [자료 출처 일광전구]


2021년, 김시연 마케팅 팀장이 일광전구에 합류했고, 현재 제품 기획과 예산운영, 마케팅 전략 기획과 운영, 수도권 생산업체 관리, 수입/수출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광전구는 김시연 팀장의 합류 이전부터 리브랜딩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권순만 디자인팀장이 외부에서 합류하며 일광전구를 전구 회사에서 롱 라이프(Long life) 브랜드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변화를 계획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구를 만들던 회사는 조명기구를 생산/판매하는 회사로 피벗 합니다. 그때 만들어진 일광전구의 브랜드가 iK 입니다.

2021년 김시연 팀장이 회사에 합류하고 처음 한 일은 2019년부터 20년까지 일광전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월별 매출 현황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회사의 온라인 샵인데, 월 매출이 100만 원을 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김시연 팀장은 일광전구의 포지셔닝을 재정립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2012년부터 전구 생산에서 조명기구 제작 회사로 피벗 한 이후, 어떤 제품과 경쟁해야 하고 어떤 시장에 진입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점을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출시된 모든 조명기구의 가격대와 브랜드들을 조사했고, 일광전구가 랜딩해야 할 틈새시장을 발굴했고 신상품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일광전구의 여러 라인중 프리미엄 브랜드인 Ik / [자료 출처 일광전구]



2021년 5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가한 일광전구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디자 인페어 당시 현장 예약 주문은 10건도 받지 못했고, 디자인 페어에서 실패했다는 경험은 조 직원들에게 ‘변화’의 당위성까지 흔들리게 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일광전구는 다시 시장 조사부터 시작하여, 고객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바우하우스 제품을 벤치마킹한 스노우 볼, 스노우 맨 제품 라인을 개발하게 됩니다. 이 제품은 21년 12월 29CM에서 론칭했고, 22년 2월 리빙 페어에서 처음으로 일광전구 부스에 긴 줄이 이어지게 됩니다. 김시연 팀장은 22년 리빙 페어를 기점으로 회사의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패배 의식을 지울 수 있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광전구의 스노우맨 / [자료 출처 일광전구]


그 이후의 행보도 자신감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iK의 조명 기구 제품을 일반 조명 기구를 판매하는 조명가게에 취급하지 않고, 한남동 등에 위치한 하이엔드 편집숍에서 전 개합니다. 다른 조명과 함께 상품처럼 진열되는 것 보다, 안목 있는 바이어들이 셀렉한 제품들이 전시된 편집숍에 입점시키는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하이엔드 편집숍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전체 포지션의 40%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Q. (to. 일광전구)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쁜 와중에 브랜드북을 만들겠다고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to. bkjn) 브랜드북을 제작하는 첫 프로젝트 타자로 일광전구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K : bkjn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김시연 팀장의 아버지, 김홍도 일광전구 대표) 이 독서를 즐기시고, 책을 좋아하셨기에 bkjn의 제안에 상당히 호의적이었습니다. 또, 어떤 유튜브에서 영화나 책 등이 열정의 집약체라는 설명을 듣고 책 출간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L : bkjn의 출항을 알리는 첫 프로젝트였기에 대상을 선정하는데 많이 고민했습니다. bkjn 은 좋은 물건을 만드는 브랜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 기준은 세 가지였어요.

① 고장이 나더라도 다시 고쳐서 오래 쓸 수 있는 물건

②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운 물건

③ 이야기가 있는 물건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은 내구성과 디자인이 기준 이상은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담겨있는 브랜드는 많이 없습니다. 단순히 유명인, 유명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을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브랜드 자체에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조건을 충족한 곳을 찾았는데 마침 일광전구가 저희가 찾던 세 가지 조건에 모두 충족했습니다.


Q. (to. 일광전구) 책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조직원의 반응은 어땠나요? 

K: 반응은 오히려 좋았습니다. 모든 조직원이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책을 제작하던 시기가 iK로 리브랜딩을 시작하고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마침 2022년 리빙 페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회사 직원들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변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맞게 출간 제안이 있었고, 회사 내에서도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일광전구 : 빛을 만들다>. 일광전구와 북저널리즘bkjn이 함께 만들다 / [자료 출처 일광전구]


Q. (to. 일광전구) 책에서도 나왔지만, 일광전구는 아직도 리브랜딩을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브랜드북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K: 일광전구의 리브랜딩은 7년 전부터 시작했지만, iK라는 일광전구의 하이엔드 브랜드는 론칭한 지 2년이 채 안 됐습니다. iK의 설립과 함께 브랜딩 작업이 필요했을 때, 브랜드북 제 작이라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브랜드북을 제작하며 시장에 우리 일광전구의 iK를 알릴 기회도 됐지만, 내부적으로 리빌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김시연 팀장) 회사에 합류하며 기존에 진행하던 일광전구의 리브랜딩에 속도를 냈습니다. 당연히 저보다 근속 연수가 오래된 임직원분들은 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 그분들의 어려움을 듣고자 노력했지만 100% 오픈을 하진 못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브랜드북 제작을 위해 bkjn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브랜드북을 통해서 내부에서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책의 출간으로 갈등의 완화를 기대했고, 대구 본사와 서울 사무실 등 유관부서 간 얼마나 힘든 상황을 헤쳐왔는지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일광전구라는 조직의 모든 팀원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필요했는데 그 역할도 이번 책을 통해 이룬 것 같습니다. 브랜드북 제작을 위해 조직원이 아닌 외부인(bkjn)과 인터뷰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서로 마음을 여는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


Q. (to. bkjn) 책을 만드는 과정도 전구를 만드는 과정과 같을 것 같습니다. 이번 브랜드북을 만들고 출간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L: bkjn이라는 북저널리즘의 서브 출판 브랜드 론칭을 알리며, 다음 프로젝트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출간까지 걸린 기간은 두 달 정도였으며, 실제 작업 기간은 그보다 더 짧았습니다. 브랜드북 컨셉이 인터뷰 형태였기에 일광전구의 임직원들의 인터뷰를 대구 본사와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했고, 인터뷰에는 대략 15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 같습니다.

킥 오프 미팅 이후 곧바로 브랜드북의 목차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일광전구에서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했기에 작업 속도가 빨랐고, 명료한 피드백으로 기간도 짧게 설정됐습니다.


Q. (to. bkjn) 브랜드를 만드는 이야기, 브랜드와 관련된 회사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태로 담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인터뷰를 통해 일광전구의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셨나요?

L: 오히려 인터뷰 형식이 출판물로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만약 인터뷰한 내용을 에세이 형식으로 변형하여 출판했다면 석 달 정도는 걸렸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속도가 생명이라고 판단해서 인터뷰 형태를 활용했습니다.

인터뷰 형태에서 중요한 점은 질문자가 답변자의 답변에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계속 물어보는 방법을 택하는 것인데, 일광전구의 임직원분들은 저희와 인터뷰 시 상당히 디테일 하게 답변을 해주셔서 2, 3차 질문까지 진행하지 않을 정도로 수월하게 제작했습니다.


Q. 브랜드북은 브랜드와 출판사의 합이 잘 맞아야 결과물이 잘 나온다고 봅니다. 이번 브랜드북 출간 프로젝트에서 상호 간의 합은 어떠셨나요?

K: 합이 잘 맞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편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2년 정도 회사에서 일한 것만 가지고 이렇게 책을 출판해도 될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주셨다.

L: 우리가 이야기에도 희노애락이 있는 것처럼, 브랜드를 소개하는 책이지만 그 기업의 굴곡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상대측에서 너무 많이 수정하려 하면 결과물이 곡해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일광전구 측에서는 큰 의견 차이도 없었고, 유선으로도 합의가 도출 가능할 정도로 많은 편의를 봐주셨습니다. 오히려 저희 쪽에서 일광전구 측이 현재 다른 프로젝트 진행으로 바쁘셔서 인터뷰로 많은 시간을 뺏을까 봐 그 부분에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Q. 이번 브랜드북을 출판하며 책에 꼭 담고 싶었던 내용과 빼야만 했었던 것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K: 꼭 담아야 할 내용은,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개발팀 팀장님이나 관리팀 팀장님 등 대구 본사에서 오랫동안 근속하며 일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브랜드북의 출간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는 기회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L: 60년 된 회사가 자신의 헤리티지를 훼손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야기를 이어온 것을 곡해 없이 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브랜드에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독자들이 궁금할 것 위주로 접근하다 보니 전구의 유통/판매 관련 부분은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Q. 브랜드북의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심플합니다. 이렇게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L: 이 책은 표지부터 내지까지 폰트 스펙을 단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표지는 마치 일광전구 상품 설명서와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브랜드의 제품이 돋보이게 하는 표지가 첫 번째 목표였기에 지금의 표지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Q. 브랜드에서 책을 만드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브랜드가 브랜드북을 만드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L: 대중이 브랜드에 대해 몰입하는 경험(Engagement) 중요해졌다고 봅니다. 잠재적 소비자(대중)에게 브랜드 호감도를 어떻게 올릴 수 있는가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물이라는 매체에 접근할 대중의 숫자가 많지는 않으나, 책이라는 매체에 접근을 시도하는 독자라면 브랜드의 깊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브랜드를 좋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Q. 실제로 브랜드북을 출간해보니, 책이라는 결과물에서 어떤 힘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K: 처음에는 회사를 알리려는 차원이었지만, 결과물을 받아보고 내용을 읽어보니 조직 구성 원들의 애사심과 그들이 지닌 인사이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회사 운영에서도 고민을 덜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브랜드북은 무엇을 담아야 하고,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란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브랜드북이 조직 내부 구성원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세션이었습니다. 일광전구의 브랜드북을 읽으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구성원만큼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가 지금의 위치에 도착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땀 흘리고, 핵심 가치를 생산 라인에서 상품에 심어내는 구성원들이야말로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일광전구의 60년도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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